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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새로운 주류 바빌로니아
아카드인은 아카드 지방의 북부에 선사 시대부터 거주하였으며 BC 3000년경 최초의 키시(Kish) 왕조를 세우면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처음으로 등장한다.아카드(Akkad)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활약한 민족 또는 그들이 살던 지방의 이름이다.이들은 수메르 북부지방에 이주 정착하여 살던 셈족 계통의 한 민족으로 사르곤(Sargon) 왕은 BC 2300 년경 부터 위대한 정복자로 알려져 왔다.사르곤 왕은 수메르의 루갈작게시왕을 패배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지배권을 장악하였다.그리하여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하나의 통일 제국을 건설하였다.그러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속에서도 도시국가의 기본적 형태는 유지되었다.아카드 제국의 전성기는 사르곤왕의 손자 나랍신왕 때였다.그의 시대에 아카드 제국의 영토는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였다.그러나 수메르인들의 저항은 끈질기고 강했다.아카드 제국은 나날이 쇠약해져 가던 중 북동 산맥 지역에서 온 구티족의 칩입에 의해 약 200 년 만에 붕괴되고 이후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은 약 100년간 야만적인 구티족의 지배를 받게된다.이러한 구티족의 지배에서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을 해방시킨 것은 도시국가 우르의 지배자 우르헤갈이었다.우르헤갈의 치세는 불과 7년만에 그치고 우루남무가 구티족을 완전하게 몰아내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왕이 되면서 지구라트를 건축하고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의 기초를 삼았다.이 후 아들 슐기왕이 점차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조직된 행정조직과 표준적인 법전을 통하여 통일 제국을 잘 다스리면서 수메르인의 제2의 번영기를 맞이했다.수메르인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만들고 도시국가 모델을 창조한 지혜로운 고대인이었다.건축에 있어서도 지구라트라는 새로운 건축양식을 만들었다.지구라트는 인공적으로 세워진 신전으로 그 형태는 상층부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었다.이것은 신을 향한 수메르인의 종교적 열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중심부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지어졌다.벽돌의 표면은 불에 구운 것으로 여러가지 그림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졌다.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이 지구라트를 묘사한 것이다.수메르인들은 종교를 과학으로도 연결하였다.수메르의 신들은 각자 고유의 숫자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천문학적.수학적 현상들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다.그래서 태음력이 만들어져 종교적 축제를 적합하게 조절하였다.산술의 기본 숫자는 60이었다.60은 수메르 최고의 신 안(An)의 고유 숫자이다.이렇게 고안한 60진법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시간이나 원의 각도를 나타내는데 쓰이고 있다.또한 수메르인들은 금이나 동으로 만드는 세공술에 매우 정교하였다.역사적 사건들을 양각하였다.특히 눈을 크게 뜨고 자연의 위대한 힘을 경외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입상을 매우 정교하게 양각하였다.그러나 BC 2,000 년경에 이르러 동쪽으로부터는 엘람인이 쳐들어오고 서쪽으로부터는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이 칩입하면서 수메르와 아카드의 통일제국 우르왕조는 무너지고 밀았다.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의 정치질서는 아모리인과 엘람인의 칩입으로 완전하게 파괴되어 갔다.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그 세력은 몹시 쇠퇴되었다.반면에 유프라테스강가의 마리(Mary)나 티그리스강가의 아쉬르 같은 도시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메소포타미아 세력의 중심은 북쪽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이 바빌론에 정착했을 당시에는 그 곳은 별로 중요한 지역은 아니였다.BC1800 년경에 아모리인 족장 수무아붐이 이웃 도시국가인 카잘루에게서 바빌론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을 넘겨받아 터를 잡았다. 수무아붐이 세운 왕조가 그 유명한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이다. 하지만 수무아붐은 스스로를 바빌론의 왕이라는 칭호로 높여 부르지도 못했다. 칭왕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빌론이 워낙 작은 마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모리인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 통일제국 우르왕조를 무너뜨리고 수메르와 아카드 문명을 흡수하여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바빌론이 화려한 강대국으로 떠오른 것은 고바빌로니아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왕 시절부터였다. 함무라비는 탁월한 외치와 내정 능력으로 작은 마을이었던 바빌론을 거대한 도시로 확장했다. 세수를 정비하는 한편 제대로 된 중앙집권제를 확립했고 엘람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냈으며 이신.라르사.키쉬.니푸르.우르 등 쟁쟁한 대도시들을 죄다 복속시켰다. 동쪽으로는 저 멀리 엘람까지 서쪽으로는 고아시리아를 정벌하면서 웬만한 지방들은 모조리 정복할 수 있었다. 함무라비는 활발한 정복 사업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재통일했고 이때 이후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은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함무라비왕의 4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바빌론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했다.바빌로니아인이 인류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함무라비 법전이다.함무라비 법전은 높이 8피트의 딱딱한 돌기둥에 새겨져 공포되었다.이 법전은 거의 4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이 보다 앞서 수메르인.아카드인들도 성문 법률을 갖고 있었는데 함무라비왕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세계 최초의 성문 법전을 편찬하였던 것이다.이 법전은 당시의 사회가 3개의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사제 및 세속 귀족들.일반시민계층인 상인 및 농민들.최하위계층인 노예들이었다.법조문은 각 계층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으며 동일 계층 내의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법앞에서 모두 평등하였다.고바빌로니아 왕조는 함무라비왕이 죽자 빠르게 무너졌다.메소포타미아 남부는 거대한 대평원 지대라 공격에 대단히 취약했다. 메소포타미아 최남단에는 시랜드 왕조가 들어서서 독립을 선포했지만 고바빌로니아 삼수일루나왕은 이를 막을 능력이 없었다. 한때 함무라비왕이 억눌러 놨던 고아시리아는 바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고 고바빌로니아의 영향권은 수도 바빌론과 그 주변 일대로 쪼그라들었다.고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중부까지 쳐들어와 고바빌로니아의 영토를 갉아먹었다. 삼수일루나의 후계자였던 아비에슈흐왕은 시랜드 왕조를 다시 무릎 꿇리려고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몰락한 바빌론에 만족한 채로 건물이나 개보수하는 것밖에 업적이 없었다. 결국 최후의 왕 삼수디타나왕이 BC 1550년경 인도유렵어족으로 오리엔트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인 무르실리 1세에게 대패하고 바빌론이 함락되면서 고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사후 150여 년 만에 허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바빌론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왕조였던 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왕조가 몰락하자 그 자리는 잠시 시랜드 왕조가 메웠다. 이때문에 시랜드 왕조를 바빌론 제2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시랜드 왕조는 태생이 강하지 못해 얼마 못 가 동쪽의 자그로스산맥에서 발원한 민족이었던 카시트인들에게 밀려났다. 바빌론을 장악한 카시트인들이 세운 카시트왕조를 바빌론 제3왕조라고 부른다. 중바빌로니아라고도 불리는 카시트 왕조는 이전의 셈족계 아모리인이 세운 고바빌로니아나 훗날 들어설 셈족계 칼테아인의 신바빌로니아 비하면 인지도는 훨씬 덜하지만 사실 바빌론을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왕조였다.무려 576년 동안이나 존속하면서 바빌론과 인근에 패권을 행사하였다.BC1450년경에는 남쪽으로 밀려갔던 시랜드 왕조의 목숨을 완전히 끝장내고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재통일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576년 동안이나 존속한 바빌론 제3왕조인 카시트왕조가 멸망하고 난 이후 제10왕조 셈족인 신바빌로니아가 들어서기 전까지 무려 6개에 달하는 왕조들이 바빌론에 들어섰다. 이 역시 모두 바빌로니아라고 부른다.하지만 대부분이 단명한 왕조인 데다가 알려진 기록도 거의 없는 탓에 별다른 주목은 받지 못한다.그러나 셈족계 칼데아인 장군 나보폴라사르가 BC 620년 바빌론에서 궐기하여 신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바빌론을 중심으로 한 제국을 재창건하면서 고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대왕 이래 1,000년 만에 메소포타미아계 제국 중심의 정통 바빌론인 신바빌로니아 즉. 바빌론 제10왕조를 세우면서 제1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BC 605년에 승하하고 아들인 네부카드네자로2세가 신바빌로니아 즉. 비빌론 제 10왕조의 2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즉위하자마자 옛 아시리아 제국의 잔재들을 철저하게 지우는 데 공을 들였다.신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우발리트 2세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끝장내는 한편 아시리아 북부의 잔군들을 처리했으며 이집트와도 전쟁을 벌여 이집트 세력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이어서 이집트 정복에 나서지만 정복에는 실패했다.그러나 중간에 걸리적 거리던 유대 왕국은 철저하게 짓밟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왔는데 이때 일어난 사건이 유명한 바빌론유수이다.당시로서는 촌구석에 해당하던 이스라엘에 살던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잡혀와 에테멘앙카와 거대한 지구라트들을 보고 경악해 바벨탑 이야기를 생각해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업적은 정복 사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현 이란 지역의 메디아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어 메디아 공주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이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아미티스 왕비를 위하여 세계7대불가사의로 알려진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지어 위엄을 과시했으며 에테멘앙카.이슈타르의 문.행진의 거리 등 수도 바빌론 전체를 전면 개보수했다. 왕은 바빌론에 가장 큰 신경을 많이 쏟았지만 바빌론뿐만 아니라 신바빌로니아 제국 내의 대다수 도시들에도 관심이 많았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재위기에 최소한 13개에 달하는 도시들이 완전한 리모델링을 걸쳐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이처럼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건축과 문화.영토 확장 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당대의 바빌론은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 즉. 세계의 수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영광을 자랑할 수 있었다.명군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43년에 달하는 기나긴 치세가 끝나자 신바빌로니아는 조금씩 몰락하게 되었다. 신바빌로니아가 멸망하자 아케메네스왕조가 몇백 년 동안 바빌론을 다스렸고 이후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국가는 다시는 등장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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